“태양이 낮아지면 바다 위에 반사광이 형성된다. 수평선에서 출렁이는 무수한 반짝임으로 이루어진 눈부신 점 하나가 해변까지 밀려온다. 반짝임과 반짝임 사이에서 바다의 불투명한 파란색은 어두운 그물을 형성한다. 역광에 의해 하얀색 배들은 검은색이 되고, 마치 그 눈부신 반짝임에 의해 소모되는 양 밀도와 크기를 상실한다.
느린 사람 팔로마르가 저녁 수영을 하는 시간이다.”[ 1 ]
오랜 시간, 몸은 글자를 받아들여 왔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 왔다.
글자를 받아들인 몸은 자연히 글자를 내뱉게 되었다. 글자는 몸을 통과하면서 해체되고 재조합되는 변형의 과정을 거쳐 나갔고, 이어 다른 몸에게 받아들여지곤 했다.
몸은 글자가 통과해 갔음에 대한 결과로서 스스로 변화하기도 했다. 그러한 몸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움직이는 몸은 글자를 받아들였음에 대한 증거가 되곤 했다.
문서 수영은 누구든 어렵지 않게 시도해 볼 수 있지만, 손쉬운 결론에 다다르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문서를 읽는 것은 문서 수영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문서는 자신을 읽어 내려는 누군가의 시도를 계속해서 벗어난다. 문서의 글자들은 연속해서 미끄러지며 살아 있음을 닮아 간다.
몸이 스스로 이루어 가는 움직임에 대한 새삼스러운 인식. 움직일 의지를 상실하게 된 몸을 또 다른 몸이 움직여 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에 부치는 일인지, 이전의 시간에 목격되었다. 그럼에도 몸은 몸을 저버리지 않는다. 몸은 몸이 계속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모든 몸이 움직이게 될 수 있도록, 힘겹게 함께 움직인다. 대상으로서의 몸이 살아 있든 그렇지 않든.
살아 있을 필요는 없지만, 움직일 필요는 있다. 그것이 문서 수영의 규칙이다.
움직임이 생과 사를 함께 덮어 간다.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수영 비슷한 몸짓을 취하는 저녁 시간.
움직이는 몸 위로 문서가 영사된다.
움직이는 몸은 바닥을 필요로 한다. 바닥에서.
몸이 바닥을 덮는다.
글자가 몸을 덮는다.
글자가 이들의 몸을 읽기 시작할 때, 글자는 제 형체를 개의치 않는다.
글자들이 몸을 넘실거린다. 글자들의 움직임은 몸의 굴곡을 만나 가며 기울어지고 일그러진다. 사방이 어둡다. 어두움이 구현된 공간에, 글자들이 하얀 빛으로 드러나 있다. 글자의 형체를 몸으로 갖춘 빛에 기대어 다른 몸들의 형상과 움직임을 지켜본다. 글자를 입게 되는 몸들, 글자가 드리워진 채 움직여 가는. 글자의 형태가 무너지는 원인이 되는 저 몸들은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
몸을 덮은 글자는 읽히기 어려워지지만, 몸을 지나간 글자는 점차 읽히게 된다. 자발적으로 움직이며 살아 있음을 보여 주는 사람들 위로 삶과 죽음을 우회하는 문서가 지나간다. 문서가 헤엄치는 자들을 읽어 간다. 읽히는 몸들에 의해 변형되는 글자들은 몸들의 살아 있음에 기대어 살아 있음을 흉내 낸다.
몸은 글자를 이제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계속 움직인다.
“팔로마르의 수영하는 자아는, 합류하고 분리되고 부서지는 직선 무더기들, 벡터 도형들, 힘의 영역들이 상호 교차하는 형체 없는 세상 속에 잠겨 있다. 하지만 그의 내부에는 모든 것이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지점이 덩어리처럼, 뭉치처럼, 응어리처럼 남아 있다. 그러니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존재하는 세상 안에서, 너는 여기 있지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느낌이다.”[ 2 ]
문서의 입장에서, 문서수령자들은 문서전달자들과 동일한 위상을 지닌다. 문서수령자들은 자신을 문서전달자로 여기곤 하는데, 문서를 수령하는 이들이 문서를 전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문서전달자들 역시 자신을 문서수령자로 여기곤 하는데, 전달할 문서를 수령하게 되기 때문이다. 문서는 복수형의 몸들에 드리워지지만 그들은 문서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문서는 변형되면서 수용되거나 수용되면서 변형된다.
문서와 몸은 움직임으로 만난다.
움직임은 문서와 몸을 필요로 한다.
저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저들이 혼자일 수 있다는 것이 관찰자를 사로잡는다. 시공간을 누비는 몸짓에 사로잡혀 가는 시공간 속에서 몸들이 머릿속을 유영한다. 부동의 관찰자는 몸들에 동화되어 간 끝에 자신이 몸들을 움직여 내고 있다고까지 느낀다. 기이한 생동으로 빚어진 환영 속에서, 그는 자신의 몸을 유영하기 시작한다. 몸들과 함께. 문서와 함께.
시간을 지나온 문서는 다가올 시간으로 향한다. 이루어지기로 되어 있는 예언의 완결성을 위해 문서는 자신을 희생한다.
엉켜 가는 몸들이 서로를 거둔다. 몸들은 몸들을 안내하고 인내하며 순환한다. 저들은 그렇게 이어지기를 택한다. 이어 서로를 벗어난다.
그런 것은 자유롭다.
빈 상자 비슷한 것이 저기 그대로 있다.
“‘이것은 내 영역이고, 그건 수용이나 배제의 문제가 아니야. 나는 여기 한가운데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거야.’ 팔로마르는 생각한다. 하지만 지상에서 삶의 운명이 이미 정해졌다면? 만약 죽음을 향한 질주가 모든 구원의 가능성보다 강하다면?”[ 3 ]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아진 진실 중 하나.
죽는 것은 상관없다. 죽음이 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
이 문장은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바람은 우리의 진실이다.
움직이는 몸의 말에, 너는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짧게 세 번, 길게 한 번 (2024)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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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연출: 뭎
영상제작: 이현지
제작지원: 우란문화재단
사진: 언리얼스튜디오
화려한 바로크 세계 After Initiation (2022)
스튜디오 오픈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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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연출: 뭎
영상: 이현지
사운드: 정진화
출연: 손민선, 신상미, 조형준, 한아름, 홍서효
실시설계: 금손건축
사진: 최연근
영상기록: 엽태준
진행, 홍보: 맹나현
- [ 1 ]
이탈로 칼비노, 『팔로마르』, 김운찬 옮김, 민음사, 2016년, 25쪽
- [ 2 ]
같은 책, 29쪽
- [ 3 ]
같은 책, 29~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