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다른 어떤 곳에서 실현되는 꿈
강보원

울타리는 경계를 설정하고 한 구역을 다른 구역과 다르게 만든다. 수평적으로 구역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수직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층이 된다. 뭎은 수평적으로, 수직적으로,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경계 만들기에 전념한다. 아마도 이는 ‘계단’이 뭎에게 중요한 오브제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뭎의 관객은 종종, 아니 종종보다는 더 많은 경우에 계단에 앉아 공연을 보게 된다. <버틀러와 포스터_Knight lands> 역시 그 중 하나로 문화연구자이자 미술 기획자인 김성은은 이 계단이 수행하는 구획의 기능을 곧바로 지적한다. “왼쪽과 오른쪽, 앞쪽과 뒤쪽으로, 말하자면 사분할된 공간을 시야에 배치하기 위해 관객은 분주하다. 그리고 여기에 막처럼 기능하는 유리문 너머에 있는 바깥쪽과 안쪽이 더해지고, 또 여기에 관객석의 단차가 가져오는 층위까지 가담한다. 낮은 단과 높은 단이라는 차이가 잘 보이고 덜 보이고의 차원이 아니라 관객에게 저마다 다른 ‘보는’ 역할을 부여하는 듯 다가온다.” [ 1 ]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많은 예시를 들 수 있다. <캐스케이드 패시지>는 A,B,C의 세 그룹으로 나누어진 ‘폐허 패키지’로 이루어진다. 공연이 시작하면 각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정해진 위치로 이동하는데, A패키지 이용자는 ‘땅’을 대변하는 1층에서(“우리는 두 발로 딛고 설 수 있는 이 땅을 사랑하고, 이곳을 떠나서는 한시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B패키지 이용자는 한층 위로 올라가 ‘하늘’에 해당하는 2층에서(“구름을 뚫고 올라가는 비행기를 상상해보세요.”) 공연을 관람하게 된다. 그리고 사전에 준비된 C그룹의 이용자들은 “구름과 같은 또 하나의 층”인 독특한 구조물 ‘플라베니아’에서 공연을 펼친다. <{오픈셋} ⊂ 쿼드리엔날>의 경우에는 “정방형의 공간에 기존에 있었던 문과 대칭되는 구조의 문과 벽을 추가로 설치하는 것으로 공간을 설치”하고, “정시(On-time)에 도착하는 관객과 10분 뒤 공연장 내부로 입장할 수 있도록 하는 지연 관객을 통하여, 작업의 큰 시간의 축, 두 개의 레이어를 형성”하여 이루어진다. ‘벽’에 대한 탐구를 수행하는 <오버 더 월>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수직적으로 계단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뭎에게 바닥도 그냥 바닥인 경우는 거의 없다. 가시적이든 그렇지 않든 대부분의 경우 뭎의 바닥은 ‘좌표화된 바닥’인데, 이 좌표는 기본적으로 공연자의 경로를 설정하거나 혹은 반대로 공연자의 몸이 그 좌표를 가로질러 누울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며, 때로는 <팝업, 게릴라, 파르티잔>의 경우처럼 관객을 배치하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경계 짓기, 그리고 층 나누기는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감각을 동시에 상기시킨다. 하나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대한 감각이고, 다른 하나는 바깥에 도달하는 것의 불가능성에 대한 감각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구획은 다른 구역으로의 이동 가능성을 전제하지만, 그러한 이동은 근본적으로 ‘구획’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는 결코 그 시스템 바깥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짧게 세 번, 길게 한 번>의 인용문을 통해 모종의 밀실공포를 접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긴 수영장일까 싶어 눈을 떠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다시 눈을 떠야 하고 눈을 떠보면 다시 눈꺼풀 속에 눈알이 덮여 있는 게 느껴져서 다시 눈을 뜨고 또 떠도 눈꺼풀을 벗어날 수가 없는 거야.” 사실 이러한 종류의 감각을 가장 열렬하게 탐구한 작가 중 한 명은 카프카이다. 「황제의 전갈」이라는 짧은 작품은 황제가 임종의 자리에서 보낸 아주 중요한 전갈에 대한 우화다. 이 몹시도 중요한 전갈을 받은 사자는 ‘그대’라고 불리는 이에게 이 전갈을 전해주기 위해 곧바로 출발하는데, 이는 결코 전해질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 사자는 한 구역에서 다른 구역으로 이동할 수 있을 뿐인데 그 구역의 나눠짐에는 끝이 없어서 이를 통과하는 데에 영원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단 두 문단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두 번째 문단은 아래와 같다.

 

“사자는 즉시 길을 떠났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강인한 남자로 이켠저켠 팔을 번갈아 앞으로 뻗쳐가며 사람의 무리를 헤쳐 길을 트는데, 제지를 받으면 태양 표지가 있는 가슴을 내보인다. 그는 역시 다른 누구보다 수월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사람의 무리는 아주 방대하고 그들의 거주지는 끝나지 않는다. 벌판이 열린다면야 그는 날듯이 달려올 것을, 곧 그대의 문에 그의 양주먹의 멋진 두드림 소리가 들릴 것을. 그러나 그러는 대신 그는 속절없이 애만 쓰고 있다, 아직도 그는 가장 깊은 내궁(內宮)의 방들을 힘겹게 지나고 있는데, 결코 그는 그 방들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설령 그 방들을 벗어난다 해도 아무런 득이 없을 것이니, 계단을 내려가기 위해 그는 또 싸워야 할 것이고, 설령 싸움에 이긴다 해도 아무런 득이 없을지니, 뜰을 지나야 할 것이고, 뜰을 지나면 그것을 빙 둘러싸고 있는 제2의 궁전이 있고, 다시금 계단들, 궁전들이 있고, 또다시 궁전이 있고, 등등 계속 수천 년을 지나 드디어는 가장 바깥쪽 문을 뛰쳐나온다면―그러나 결코,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비로소 세계의 중심, 그 침전물이 높다랗게 퇴적된 왕도(王都)가 그의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 어떤 자(者)도 이곳을 통과하지는 못한다. 비록 고인(故人)의 전갈을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도 그대는 그대의 창가에 앉아 저녁이 오면 그 전갈을 꿈꾼다.”

 

이 이야기의 아이러니는 일차적으로 황제가 임종의 순간에 남긴 지극히 중요한 전갈과 그것의 전달 불가능성이 충돌하며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 작품에 진정으로 생명을 부여하는 또 다른 아이러니는 마지막 문장이 지닌 어떤 충격으로부터 온다. 우리는 이 긴 문단을 읽어가며 이미 사자가 결코 자신의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게 된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기치 않게 묘사된 ‘그대’의 존재, 어느 저녁 창가에 앉아 여전히 그 전갈을 기다리는 ‘그대’의 꿈, 그 꿈의 생생함이 우리에게 어떤 충격을 주는 것이다. 요컨대 이 작품의 숨겨진 아이러니는 황제가 보낸 전갈의 전달 불가능성과 그 전갈을 기다리며 ‘그대’가 꾸는 꿈이 지닌 생생함의 충돌이다.

 

하지만 만약 이 꿈이 전혀 이루어질 가망이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그러한 생생함과 충격을 지니고 있을 수 있을까? 이는 그 꿈이 자신도 모르게 어떤 다른 층위에서 실현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사자의 여정을 그리는 소설의 내적 서사는 사자가 ‘그대’에게 닿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짧은 소설은 어떤 방식으로인가 그러한 불가능성을 훌쩍 뛰어넘어 저녁 창가에 앉아 그 사자를 기다리는 ‘그대’의 현전까지 순식간에 가닿는 데에 성공한다. (영화에 빗대면 조금 더 명료할 것 같다 – 서사에 속해 있는 인물은 궁을 빠져나오지 못하지만 그 서사를 전달하는 카메라는 어떤 방식으로인가 궁을 빠져나와 ‘그대’의 모습을 찍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의 꿈은 바로 이 직접성과 모종의 방식으로 접촉한다. 이 직접성은 서사의 바깥에 존재하며 오로지 이미지의 어떤 역량을 통해 성취될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사자는 영원히 반복해 나타나는 문이라는 서사에 속해 있지만, 이미지는 서사의 모든 층위를 가로지를 수 있으며 그 모든 곳에 동시에 현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꿈의 직접성, 이 꿈의 생생함이란 창틀에 팔꿈치를 얹고 턱을 괸 채 저녁의 창밖을 바라보는 ‘그대’의 몸짓이 지닌 생생함이기도 하다. 이는 뭎이 설치한 수많은 경계와 자기폐쇄적 회로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생생함이기도 할 것이다. 정지돈은 뭎의 인물들이 “아주 느리게 움직이거나 보통 사람처럼 걷거나 뛴다”고 묘사하며 “탈인간적인 무용수의 기교를 보러 온 관객들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돌아” [ 2 ] 가게 될 수도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적어도 카프카는 그런 동작들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어떤 의문도 갖지 않았을 것이다. 카프카에게 있어 결코 해소되지 않는 가장 결정적인 신비는 누군가가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한다는 단순한 사실 자체에 있었기 때문이다.

 

 

 


둘이 된 순간 (2014, 2015)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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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연출: 뭎

사운드: 남상원

출연: 강호정, 권영호, 김지민, 이효선, 임정하, 조형준 

사진기록: 김두호, 임종혁

영상기록: 강상우, 고유희, 정재훈

 

  • [ 1 ]

    김성은, <2/3. 空器 -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그릇>

  • [ 2 ]

    정지돈, [정지돈의 스페이스 (논)픽션] 1. 갑자기 모든 것이 변해서 설탕이 써지고 납이 가벼워지고 돌을 놓았을 때 돌이 떨어지는 대신 날아가는 것을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네
    (https://vmspace.com/report/report_view.html?base_seq=MTUwNQ==)

  • 강보원

    시와 평론 등의 글을 쓴다. 시집 『완벽한 개업 축하 시』, 산문집 『에세이의 준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