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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年 11月 □□日 2:00 am
베를린에서의 밤
오늘 밤, 나는 불가사의한 우연 속에서 과거와 만났다. 복도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네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인가, 아니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로 가득 찬 공간인가?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지만, 네 얼굴은 여전히 익숙했고, 우리 사이의 대화는 마치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었다.
너를 본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아니, 어쩌면 멈춘 것처럼 보였을 뿐, 그 속에서도 무언가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네가 내 이름을 부르던 그 목소리는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공연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그 공연 속에서 무엇을 보았던가? 그 장면들, 그 정적, 그리고 그 균열. 나는 그날 이후로 공연의 끝을 믿지 않게 되었다. 공연은 끝나지 않았다. 황폐한 공간에서도 여전히 그것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 공연에서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관객이었다. 배우들만큼이나 관객들의 움직임 또한 공연의 일부였다. 무대 위에서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지만, 관객들은 긴장과 호기심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배우들이 남긴 쪽지들을 탐정처럼 살피고, 한 발씩 무대 가까이 다가갔다. 마치 공연의 저주에 사로잡힌 듯한 모습이었다. 어떤 관객은 손에 쪽지를 쥔 채 머뭇거리며 균열 속으로 들어가듯 침묵했고, 또 어떤 이는 속삭임처럼 다른 이에게 쪽지를 건네며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순간, 관객들이 공연의 유령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무대와 분리되지 않았고, 오히려 무대의 연장선상에서 전염된 시간 속을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너와의 대화는 나를 다시금 오래된 시간의 미로 속으로 데려갔다. 너는 나에게 멈춤에 대해 이야기했다. 멈추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이 우리를 재촉할 때, 멈춘다는 것은 어떤 저항의 몸짓인가, 아니면 단순히 낙오된 증거인가? 네가 말했다. "멈추는 것은 용기다." 나는 그 말의 무게를 느꼈다. 그리고 네가 발견했다는 조각들에 대해 생각했다. 공연의 흔적, 폐허 속에 남아 있는 이야기의 파편들. 그것들은 저주처럼 우리 안에 스며들고, 잊힌 시간처럼 떠돌며, 우리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 우리는 그것을 다룰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것에 전염될 운명일까?
잠이 들었을 때, 나는 기묘한 꿈을 꾸었다. 그것은 시간에 대한 괴담이었다. 오래된 기차역. 멈춰 있는 낡은 시계. 그 시계는 시간을 잃은 채 폐허 속에 서 있었다. 나는 시계 앞에 서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나를 응시하며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했다. 시계의 바늘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틈이 생겼고, 시간은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나를 삼키려 했다. 마치 폐허 자체가 시간을 품은 무대가 되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때, 공연 속 배우가 나타났다. 얼굴 없는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시간은 무대다.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폐허조차도 공연이다." 그의 목소리는 유령 같았고, 나는 그 목소리가 내 안에서 퍼져가는 소용돌이를 느꼈다. 틈 사이로 흐르는 시간, 그리고 그 간극에서 살아 숨 쉬는 무언가. 나는 그 속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이 과거인지, 미래인지조차도.
꿈에서 깨어났을 때, 방은 차가운 공기로 가득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시간의 저주 속에서 공연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끝나버린 흔적들이, 그 끝나지 않는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네가 던진 질문들로 나는 다시 균열 속으로 걸어 들어갈 용기를 생각했다.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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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일기는 챗 지피티 4.0가 작성하고, 박유진이 편집했습니다. 박유진은 공연을 직접 감상한 적 없던 챗 지피티와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파일 “IMG_5418,” “IMG_5401,” “IMG_4746,” “IMG_4678,” “unnamed,” “220824 두번째 편지 to은교.pdf,” “220823 붙이지못한편지 to은교,” “220806 첫번째 편지 to은교,” “사후-무대 About”을 일차 자료로 제안하였습니다. 그다음 우연히 영화관 앞에서 만났다는 배경 하에 몇 년 전 공연을 서로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장시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K의 일기는 이 대화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화려한 바로크 세계 (2021)
문화역서울 284, 중앙홀
2021.11.1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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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연출: 뭎 Mu:p
출연: 손민선, 조형준, 한아름, 홍서효
사운드: 정진화
영상: 이태석
사진 기록: 최연근
영상기록: 엽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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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대한민국건축문화제
멈춰라, 시공간 (2024)
스튜디오 오픈셋
2024.7.3.(수) - 7.3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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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연출: 뭎
기록 및 편집: 이한범
조사관: 맹나현
사설탐정: 녹스(이소여), 베일리(전혜인), 피셔(성재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