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서 바닥을 스치다(모아서 버리다)
백종관

 

오전 10시 48분, 지하철을 탔다. 정확히 탑승 시각을 확정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던 사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에 타자마자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같은 열차칸 안에 젊은 여성 한 명과 중년 여성 한 명이 멀찍이 떨어져 서 있는 채로 각각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꽃을 들고 있는 모습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 꽃다발을 세 개씩 들고 있다는 점이 기이하게 느껴졌고 그 꽃다발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 순간 열차칸을 서로 연결하는 위치의 문이 열리고 이번에는 두 개의 꽃바구니를 든 사람이 나타났다. 트리플, 트리플, 더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던 것일까.

 

오래 지나지 않아 그 기이한 풍경의 원인을 추리해 낼 수 있었다. 꽃다발의 꽃무더기 속에서 카네이션 몇 송이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내일’은 5월 8일. 꽃배달을 하는 분들이구나. 그분들의 차림새가 모두 거의 평범한 직장인들과 같았기 때문에 나는 더욱더 처음부터 배달 아르바이트라는 행위를 떠올리기 어려웠던 것 같다. 올해는 아니었지만 나도 부모님께 꽃배달 서비스를 통해 꽃 선물을 드렸던 적이 있다. 꽃은 이렇게 가고 있었구나, 물론 다른 배송 수단을 통해서 갈 수도 있겠지만 많은 꽃들이 이렇게 지하철 안에서 타인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 평범한 풍경에 아주 미세하게 변화를 일으키면서 가고 있었구나. 우리는 주로 쉬이 '주문자'와 '수령인'들 곁에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가 주문한 물건을 들고, 그것을 배달하는 이가 한참동안 내 바로 옆에서 창 밖을 바라보며 서 있는 것이다. 그런 상상 속으로 열차가 달려간다.

 

뭎의 두 사람이 그동안 만들어 왔던 작업들을 돌아보던 중에, 그 5월 7일 지하철에서 겪었던 시간을 떠올린 것은 어째서일까. 문득 들었던 생각은, 뭎의 작업이 바로 내 곁에서 하나의 꽃다발이 아니라 두 개 혹은 세 개의 꽃다발을 품에 안고 서 있는 누군가와 비슷한 심상을 일으키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다. 지금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공간에 있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 하지만 실상은 늘 당신 곁에 있어왔던 -  사건들을 부러 이곳에 소환하는 일. 물론 그 사건들은 최초의 모습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변형 과정을 거쳐 내 옆으로 도달한다. 나의 간편한 상상 속에 하나의 오브제만 존재해 왔다면 이번에는 둘 이상의 오브제들이, 단 한 번의 ‘일어남’만 있었다면 이제는 그것이 자꾸 반복되는 기이한 상황들이 뭎의 숲에서 일어난다.

 

 

 

 공연 <춤, 극장을 펼치다>(2013) 기록 다큐멘터리 <극장전개>(2014) 스틸

 

뭎은 계속해서 무언가 쓸어내는 일을 만들어왔다는 느낌이다. 5월 7일의 지하철이 내게서 ‘하나’라는 평범성을 쓸어내어 다른 상황을 상상하게 했던 것처럼, 그들은 몸으로 혹은 다른 도구를 가지고 바닥을 스치면서 땅을 밀어내고 그곳에 정박해 있는 개념들을 자꾸 다른 곳으로 쓸어내는 시도들을 이어왔다. 위에 있는 네 개의 이미지는 2013년 2월에 뭎의 두 사람이 함께 공연을 준비하고 있던 장면을 내가 기록한 것이다. 그들은 (역삼역에 있던) LG아트센터 1층, 직장인들의 목적 없는 발걸음으로 가득한 로비 공간의 무료함을 몇 가지 움직임들의 조합으로 쓸어낼 심산이다. 잘 쓸어내기 위해서는 그 무대의 평면을 그들의 의도대로 구조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얀 점들의 집합이 몇 가지 움직임의 함수들을 지시한다. 공연이 시작되면 일상이 스러지고 다른 장면들이 채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당신에게 ‘여전한’ 공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창밖으로는 늘 보이던 풍경들이 그대로 당신을 감싸고 있다. 그럼에도 다른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행위들을 설계해 보는 것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      )을/를 끌어서 (      )을/를 쓸어낸다.  

 

 

 


좌표화된 로비 (2013) 
 

GS타워 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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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구성: 뭎 
출연: 김영호, 이효선, 조형준
사운드: 남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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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극장을 펼치다. Part 1

  • 백종관

    잊혀지는 이야기들을 어떻게 소환할 수 있을지, 미학적인 실천 또한 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며 영상과 소리를 수집하고 영화를 만들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