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비로운 경험을 얘기해 볼까 해
신목야
  • [1] 신비로운 경험을 얘기해 볼까 해 - 신목야
    [2] 명백하지 않음 - 신목야
  • [1] 신비로운 경험을 얘기해 볼까 해 - 신목야
    [2] 명백하지 않음 - 신목야

으레 다큐멘터리 감독은 촬영에 나서기 전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고는 한다. 대상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질문을 하거나, 벽에 붙은 파리마냥 개입을 최소화하고 기록하는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찍어온 나 또한 촬영에 들어가기 전 크게 이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결정하고는 했다. 하지만 내가 작년과 재작년에 걸쳐 겪은 꽤나 신비로운 경험은 이러한 관성적 습관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했다. 나는 이 두 번의 신비로운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참이다.

 

돌이켜보면 이 신비한 경험은 그리 대단치 않게 시작되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우연히 발생한 일들이었다. 재작년 작가 조형준과 손민선으로 구성된 뭎은 내게 기록 촬영을 제안해주었다. 기록의 대상은 앞으로 진행될 교육 프로그램과 교육 참여자, 그리고 교육을 주관하는 뭎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 외에 정해진 것은 딱히 없었다. 내가 미리 알 수 있었던 것은 프로그램의 타이틀이 수풀1.4라는 것, 프로그램의 내용이 공연 제작 워크숍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 정도였다. 우리는 해당 기록물이 쌓인다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질 수 있겠다는 내용 정도를 공유했고, 며칠 뒤 첫 촬영이 잡혔다.

 

수풀1.4는 설계편과 실전편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설계편만 참여할 수도 있지만, 실전편은 설계편 참여자만 신청할 수 있다. 사전 공고에 지원한 사람 중 일부가 선정되며, 기수별로 운영된다.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뭎의 작업 공간인 오픈셋에서 진행된다. 뭎은 이곳에서 몇 차례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보통 한 기수당 일곱에서 열 명 사이의 인원이 참여하고, 교육은 4회차로 종료된다. 회차당 네 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여기까지가 수풀1.4에 대한 객관적 서술이다. (어쩌면 카메라도).

 

높은 층고에 커다란 직사각형 형태, 전반적으로 비어 있는 공간에는 따로 책상이나 의자가 없다. 참여자들은 바닥에 동그랗게 둘러앉는다. 긴장과 기대,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면서도 타인이 바라볼 자신에게 시선이 꽂혀 있는 참여자들이 보인다. 한 벽면에는 커다란 창문이 네 개 나 있어 촬영하기 적합한 자연광이 들어온다. 손민선은 밝게 웃으며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때때로 크게 웃는다. 조형준의 미소는 참가자들의 긴장을 이완시킨다. 참여자들은 네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해 질문하고 답한다. 첫날의 풍경. 이것은 나의 주관적 서술이다. (어쩌면 카메라도).

 

객관과 주관은 주체의 문제다. 주체는 해석의 주인이 되어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간다. 뭎은 수풀1.4를 “참여자가 이미 정해진 역할을 할당받아 수행하는 공연 제작의 관습을 뒤집어, 한 모임-집단의 구성적 특성이 공연의 형식을 스스로 찾아가도록 하는 교육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보통 공연은 퍼포머와 비퍼포머,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자와 스테이지 뒤에 있는 자로 나뉘며, 이는 공연의 연출자와 출연자 사이의 권력 관계를 형성하고는 한다. 출연자는 연출자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신체를 움직인다. 뭎은 프로그램을 통해 공연의 “관습을 뒤집는 것”이라는 꽤나 거창한 포부를 밝히고 있지만, 수풀1.4가 관습을 뒤집는 방식은 단순하다. 말하기와 듣기, 여기에 더해 허구적 상상력이 작동된다.

 

참여자들이 차례를 돌아가며 서로에 대해 질문하는 이유는 서로의 이름과 능력을 탐색하기 위해서다. 이름짓기와 능력 탐색은 수풀1.4를 작동하게 하는 유일한 요구 중 하나로, 이름과 능력을 탐색하기 위해 이들은 서로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듣기를 반복한다. 상대의 정신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 시간을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능력, 초월적인 힘을 가진 능력. 어딘가 유치해 보이기도 한 허구적 캐릭터 만들기는 어울리는 이름 짓기로 이어진다. 버틀러, 포스터, 챈들러, 셰퍼드라는 이름이 지어지고,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주어진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이곳의 규칙이다.

 

로제 카이와는 『놀이와 인간』을 통해 놀이란 규칙의 체계라고 밝히면서, 놀이에서 규칙이란 자의적이며 동시에 강제적인 약속이라고 설명한다. 그 약속이 깨진다면 놀이는 즉시 끝나게 된다. 수풀1.4는 일종의 모방의 놀이다. 카이와에 따르면 미미크리(Mimicry)는 허구적인 닫힌 세계를 일시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태다. 그렇다고 수풀1.4가 미미크리에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미크리가 가면을 쓰고 어떤 인물을 연기하는 것, 가장하는 것이라면, 수풀1.4의 참여자들은 타인들이 관찰한 나를 연기한다. 다른 이름을 쓰고 있는 나이면서 타인의 시선으로 직조된 나를 모방하는 요구를 받는다. 나와 직조된 존재 사이 어딘가를 탐색하는 과정이다. 이들은 동시에 다른 참여자들의 질문에 스스로 답하며 타자화된 나를 마주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상태는 일종의 정신적 현기증 상태, 모호한 주체 탐색의 순간이다. 허구적으로 호명된 객체와 주체 사이의 갈등, 급속한 전이가 이루어진다. 그런 점에서 참여자들은 점차 일링크스(Ilinx)의 상태로 이행하게 된다. 카이와가 분류한 놀이의 한 형태인 일링크스는 기분 좋은 패닉 상태로, 급속한 회전, 미끄럼질과 같은 신체 놀이를 예로 들고 있다. 공연을 설계하는 참여자들은 신체가 어딘가 모르게 이 예비적 일링크스의 상태로 진입하고 있는 듯 보인다.

 

나는 앞서 신비로운 경험에 대해 언급했다. 그 경험이란 수풀1.4 참여자들의 예비적 일링크스의 상태를 목격하는 순간이었는데, 이때 기록하는 카메라는 놀이의 상태 안에 존재하게 된다. 보통 카메라는 철저하게 계획된 장면들을 찍거나, 카메라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진행되는 예상치 못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 하지만 일링크스의 상태에 진입한 곳, 허구적이지만 또 허구적이지 않은 이 비어 있는 틈 사이에서 카메라는 카메라라는 기록기계인 객체이자, 카메라를 움직이는 촬영자라는 주체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게 된다.

 

이는 수풀1.4 2기 마지막 프로그램 즈음에 나타났던 현상으로 이야기될 수 있다. 수풀1.4 2기의 경우 설계편과 실전편이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실전편에서 올린 일종의 테스트 공연 중 있었던 일이었다.

 

카메라는 공연의 전체 전경을 담을 수 있도록 공간의 입구 쪽에 설치되어 있다. 테스트 공연이 시작되자 참여자들은 분주히 자신의 역할에 어울릴 법한 행동들을 이어 나간다. 누군가는 종이에 무엇인가를 쓰고, 누군가는 누워 있으며, 누군가는 동그랗게 뛴다. 그러던 중 한 참여자가 카메라를 향해 걸어온다. 카메라의 녹화 버튼을 누른다. 기록은 중단된다. 공간 밖으로 나간 참여자는 몇 분 뒤 다시 돌아와 녹화 버튼을 다시 누른다. 카메라, 그리고 카메라의 촬영자는 내내 함께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며, 내게는 어떤 역할도 부여된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수풀1.4가 기존의 관습을 뒤집는 방식은 그곳에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의도적 연결보다는 존재하는 것들이 한데 뒤섞이며 발생시키는 집단적 놀이의 상태가 아닌가.

  • 신목야

    저널리스트로 활동해왔다. 지금은 영화를 쓰고 연출한다. 허구와 실재 사이 어딘가를 탐색한다. 암스테르담포르노영화제,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에서 영화를 상영했다.

[1] 신비로운 경험을 얘기해 볼까 해 - 신목야
[2] 명백하지 않음 - 신목야